아침에 눈을 뜨고는 머리가 지끈하다. 어른들이야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비지찌개와 반숙 계란 프라이를 해서 먹으면 되는데 아이들 메뉴를 생각해 놓지 않았다. 국수 먹을 때 우려 놓은 다시 국물을 베이스로 만든 된장찌개는 아이들이 흡입해 어제저녁에 다 먹어버렸고 얼려놓았던 미역국도 다 떨어졌다. 이럴 땐 셋 중 하나다. 빵 or 김과 달걀 or 조기! 오늘은 냉동실에 얼려둔 조기 찬스. 아이들이 생선은 참 잘 먹는다. 고등어, 갈치, 삼치 종류별로 얼려두고 때때로 먹는데 생선중에서도 조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이처럼 오늘 뭐 먹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괴롭힌다. 요리가 재미있다가도 정 떨어지게 지긋지긋한 것은 매번 끼니마다 무얼 해야 할까 대충 먹을까 싶다가도 건강하게 먹고 맛있게 먹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행복한 엄마로

사실 나는 요리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동생이 좋아하는 볶음밥을 해주겠다고 집안에 당근이며 양파며 잘게 채 썰고 다져서 윤기 나는 볶음밥을 만들어 주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결혼하니 신혼집에 내 주방이 생겼다. 일류 요리사의 특급 코스도 만들어 낼 것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창의력을 발휘해 맛있고 예쁜 밥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활동이면서 주변의 식재료를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저렴하게 멋진 음식으로 탄생 시기는 가성비, 가심비 끝판왕의 활동이다. 결혼하고 한동안 소스와 간장, 물엿, 까나리액젓 이런 양념들과 라이스페이퍼, 당면, 부침가루 등의 재료를 산다고 돈도 꽤나 썼다. 매일매일 신랑이랑 바로바로 술안주를 만들어 어울리는 술과 함께 먹는 재미에 요리가 행복했다. 좋은 취미 하나 생겼다고 생각했고 나의 남편은 요리 좋아하는 아내를 만나 '행복하겠네(내 생각;;) '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했던 요리가 지긋지긋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아이들 식단은 저염식, 맵지 않은 음식으로 준비해야 하고 가사노동과 장보기, 요리, 게다가 냉장고에 썩어나가는 식재료, 냉장고에 한 번들 어간 음식은 잘 손 안대는 아이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은 요리가 미루고 싶은 일이 되어 버렸다. 갓 지은 밥은 누구나 맛있다. 나도 그렇다. 냉장고에 식은 밑반찬을 맛있게 먹어주지 못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원망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인정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엄마도 부엌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오늘 뭐먹지생각하다가 하루가 다 갔어.

어느 날은 아침에 '뭐 먹지' 한참 고민해서 차리고 설거지하고 나면 '점심에 뭐 먹지'를 고민해야 하고 먹고 치우고 나면 '저녁에 뭐 먹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말이지 이런 날은 너무 싫다. 나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째서 엄마의 역할은 '오늘 뭐 먹지'만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결혼이란 굴레가 엄마라는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뭐 먹지' 고민에 하루를 보낸 날이면 꼭 죄 없는 남편이 미워진다. 아이들이 귀찮다. 일주일 식단을 고민 고민해 적어 냉장고에 붙여놓은 한주는 걱정이 덜하다. 남편에게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이들이 예쁘다. 엄마의 마음관리가 가족들에게 전해지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하루는 필자보다 결혼을 빨리한 언니가 그러더라. "생년월일이 8로 시작하는 사람이랑 7로 시작하는 사람이랑은 천지 차이나, 우리 남편은 79라서 아주 집안일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아. 그래도 자기 남편은 8로 시작하잖아 생각하는 거부터 틀리다니까 잘 도와주고 얼마나 가정적이야~ " 물론 생년월일이 8자로 시작하는 우리 남편도 참 가정적이고 집안일도 많이 돕는다. 하지만 각자 주된 집안일의 분배가 있는터 주방에서 요리하는 일은 내가 도맡아 하기 때문에 어쨌거나 '오늘 뭐 먹지'에 대한 고민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목표는 하나이다. 고민타파!! 시간 확보!!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지 않고 계획대로 움직여 나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 대신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나의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원칙이 있어야한다. 남편은 돈을 벌고 나는 가정을 돌보고 나의 일으로 알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대신 계획적으로 해서 나의 지끈지끈한 그 오늘 뭐먹지 고민에서 벗어나 보자.

 

원칙

1. 건강을 생각한다. 
2. 장은 일주일에 1회 본다.  
3. 사온 재료는 2주 안에 소비한다. (기본재료와 냉동식 제외) 
4. 따라서 남은 식재료 소비를 위해 식단은 2주 치를 생각하고 짠다. 
5. 일주일치 먹을 채소는 미리 손질해서 모두 한통에 담아 둔다. 이것만 냉장고에서 들고 나오면 되도록 
6.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 (고마워. 남편)

 

 

엄마도 집안 일만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건 아니야!

손에 물마를 날 없는 육아와 가사노동은 정말 지친다. 옛날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평생 학문을 닦고 시를 쓰며 한 시대의 주역으로 학문과 정치에 몰입하며 조선사 500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집안일과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한 노비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데 딱 내가 그 노비 짝이다. 여자의 인생이 이런 것인가 호도하게 된다. 이 집의 집안일만하는 노비로 살 것인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엄마도 하고 싶은 거 많단다. 
우선 오늘 뭐 먹지 고민에서 벗어나 두뇌 가동의 여유가 생기면 나의 발전에 시간을 쓰자.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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