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도 육퇴가 필요해(feat. 나를 위로하는 유칼립투스)
마음지옥을 만나다
한 달 전쯤이었을 거다. '우주 고래 주의보'가 내렸다. 말도 못 붙이게 옷깃만 스쳐도 찬바람이 쌩쌩불어 남편은 내 눈치를 보느라 힘들어했다. 긍정적이고 잘 웃는 성격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게 마음이 황폐해졌던 때였다. 이유는 불만족과 답답함이다. 두 아이와 남편 식사 (점심 도시락)를 챙기며 집안일이란 집안일을 다 도맡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고 그 헛헛함을 잠과 TV로 채웠다. 이러다 보니 나에 대한 불안과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지하 10층까지 내려앉아 버린 것이다. 인간으로 살면서 자아실현과 정신적 성숙은 이래서 참 중요하다. 가슴 뛰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때는 잠이 부족해도 일어나고 아무리 집에서 맡은 일이 많아도 즐겁고 미래가 기대되었다. 하지만 내 시간이 줄고 집안일은 밀리고 흥부는 잘 안 먹고 도담이는 잘 안 자고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마음 둘 곳을 잃고 나도 놓았다. 그건 정말 지옥이었다. 마음 지옥.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아마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그 지옥에 갇혔는지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지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지경에 이르기 까지만 해도 삶에 너무 만족하며 아이 둘 낳고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는 지인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마음이 참 단단해 나는 이렇게 살아도 즐거워라며 남편과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유는 사회로부터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과 과중한 가사노동 해결방법은 공부와 가사분담이다. 임신했을 때 여성 호르몬의 변화가 성격도 바꿔 놓는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니다. 이번에도 그 비슷한 느낌이다. 슬럼프를 겪고 있는 나는 세상이 미웠고 남편은 더 미웠다. 왜 더 일찍 오지 못하는지 왜 애들을 일찍 재우는데 동참해 주지 않는지 왜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이까지 내가 씻기는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다 싫었다. 이런 내가 나도 미워지고 세상도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서 숨고만 싶었다 그런 내가 창피했다.
눈치 빠른 남편은 참다 참다 문자를 보내왔다. "집에서 여보 눈치 보느라 너무 힘들어요" 화를 낼만도 한데 부드럽게 이야기를 시작해 주는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그래서 할많하않... 불만이 많았지만 그 불만들은 내 속의 호르몬 때문에 생긴 문제니 남편에게 쏟아 놓아 봤자 남편 속만 상할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미안해 여보. 나 요즘 힘들어서 그래. 저녁에 맥주나 한잔해요" 그날 밤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서로 힘든 점을 털어놓았다. 다음날 바로 남편은 일찍 나가고 일찍 퇴근해 주었다. 나의 슬럼프의 해결책은 ' 육아 퇴근!! 개인 시간 확보'였기에.
엄마도 육퇴가 필요해요
낮에라도 도담이가 잘 자주면 개인 시간이 생길 텐데 재워놓고 나오면 30분 있다 깨고 잘 못 자니 잘 못 놀고 보채고 금세 졸려하지만 또 재워놓으면 30분 있다 하늘이 무너져라 우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흥부는 잘 먹지 않으니 이것저것 해보다 그냥 머리가 멍해져 버렸다. 오늘 뭐 먹지 남편 도시락은 뭐 싸지 애들 먹을 건 뭐하지..... 머리가 벙 쩌버렸다. GG 쳤다. 이런 생활을 몇 개월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거였다.
남편이 일찍 들어와 주기 시작하면서 숨이 트인다. 이렇게 글을 쓰고 미라클 모닝을 할 도전 의지도 생겼다.
엄마가 되고 나니 내가 돌봐야 할 것 투성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전부이고 남편도 건강 해치지 않도록 골고루 먹여야 하고 출근하며 입고 나갈 옷들도 때맞춰 빨아 두어야 한다. 나는 누가 챙기나 싶을 때 우리 엄마 생각이나 눈물이 났다. 이래서 시집가야 엄마를 이해 해나보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니 모두가 내가 돌봐줘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든든한 남편은 우리 엄마 같이 나를 품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든든은 해도 엄마 품과 같진 않은 게 남편인가 보다.
마음이 너무 헛헛했다. 그때 만난 아이가 대형 아레카야자와 소형 유칼립투스다. 유칼립투스는 싱싱 장터에서 4천 원에 충동구매했고 대형 아레카야자는 당근 마켓에서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분에게 7만 원에 데리고 왔다.
대형 화분이었는데 보자마자 이건 사야겠다. 하고 남편에게 연락해서 그날 밤에 바로 데리고 왔다. 너무 무거워서 집에서 쓰던 구르마가 바퀴가 덜렁거리게 되었고 남편은 무거워서 한겨울에 땀을 철철 흘리며 집까지 15분 거리를 끌고 왔다. 나는 싱글벙글하였다. 남편은 별로인 듯 보였지만 하루 만에 이 아이가 집에 와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힘들었지만 집에 잘 어울리는 나무라며 좋아했다.
설거지해주고 가정의 평화를 선물 받길
그렇게 나는 호르몬의 균형을 찾아갔다. 매일매일 일찍 들어와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나에게 육퇴를 선물해준 우리 남편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엄마가 지고 있는 가정 유지의 무게는 남편들의 가장의 무게와 맞먹는다. 심한 가사 노동의 강도와 정신 차릴새 없이 휘몰아치는 육아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럴 땐 남편들의 가사 분담이 정말 절실하다. 일찍 들어와서 애를 씻기든 설거지를 해주든 하나는 자발적으로 하자. 엄마들에게 육퇴를 선물해 줘야 눈치 볼일 없이 엄마들이 즐겁게 더 많은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마음관리가 된다. 설거지해주고 가정의 평화를 선물 받길 바란다.
나를 위로해주는 반려식물을 만나다
키우기 까다로운 유칼립투스는 한 달째 잘 살아가고 있다. 정말 정말 좋은 것은 일주일에 한 번 물주며 푸릇한 입사귀들이 얼마나 자랐나 요리조리 살펴보는 일이 참 재미나다. 달걀은 자주 먹는 식재료인데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도 지독하다. 탁 깨서 저렇게 식물 위에 놓아주면 좋은 영양분은 식물이 먹어서 좋고 나는 달걀을 말려 버릴 수 있어 너무 좋다. 덕분에 우리 유칼립투스는 있는 대로 새싹을 틔어 나에게 매일 같이 가지치기를 당한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 생긴 셈이다. 수형을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 마음껏 잘라내고 키워줄 가지는 주변 가지를 쳐서 확실히 밀어준다. 내 맘대로 좌지우지. 아이도 남편도 인생도 쉽지 않은 이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식물 하나 키워보는 것도 육아맘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유칼립투스를 다듬었다.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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